But Beautiful

전여빈이 웃는다. 슬픔과 환희가 아름답게 섞인 표정으로.

Photo — DAEHAN CHAE @daehanx
Edit —
HYEWON JUNG @hyewonittoo, MINJI GU @cestminji

Shirts LEMAIRE. Denim Pants LEVI’S VINTAGE CLOTHING.

YEOBEEN JEON, ACTOR

전여빈 @jeonyeobeen

                  

크게 넘어진 경험, 겪어 본 좌절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한다. 그러나 전여빈에게 그건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딛고 일어서고 싶은 자세다.

Jacket SAINT LAURENT. Shirts STUDIO NICHOLSON by 1LDK SEOUL.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렸어요. 오늘 같은 날에 인터뷰할 수 있어서 기뻐요.

바쁘고 행복한 나날이죠? 감사하게도 한 해를 잘 지냈어요. <죄 많은 소녀>를 2016년 한참 추운 겨울에 시작해서 세밀한 녹음은 6월까지 이어졌던 것 같아요. 아, 아직 영화 안 보셨죠?

봤어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하고 인사 나누는 모습 보고 ‘영희’를 연기한 배우가 저렇게 밝게도 웃는구나, 생각했어요. 정말요? 보셨군요! 와, 감사합니다. <죄 많은 소녀>를 촬영하는 동안에는 계속 ‘영희’에 대해 생각하고 집중했어요.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요. 그 탓인지 ‘영희’가 가진 무거움을 내내 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좀 어때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썼는데, 여전히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 처음과 중간 과정, 마무리하는 과정, 그리고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이고 관객분들을 만날 때, 함께 했던 팀을 만나서 얘길 나눌 때 감정이 계속 새로워져요. 그런데 아직 공식 개봉 전이라 말을 많이 아끼게 되네요. 개봉하면 우리 그때 다시 얘기해도 돼요?

그럼, 지금은 다른 얘기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얘기를 해 볼까요? 좋아요.

‘모금산’의 영화가 시작할 때 ‘자영’이 편하게 어깨를 쭉 내리는 장면, 너무 좋았어요. 저도 그 장면을 아주 좋아해요.

평소엔 영화를 어떤 자세로 봐요? 등을 아주 꼿꼿이 펴고, 모든 영화를 볼 때 살짝 긴장하고 집중하면서 봐요. 심지어 집에서 볼 때도 반듯하게 앉아서.

되게 자연스러웠는데, ‘자영’이라서 그랬던 거군요. ‘자영’을 생각하면, 친구 금산(기주봉)을 오랜만에 만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았을 것 같아요. ‘역시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었어. 좋은 아저씨였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명세 감독과 기주봉, 안성기 배우와 함께했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GV를 봤어요. 그날 정말 신나 보이던데요? 평소에 GV 참석할 땐 긴장을 잘 하지 않는데, 그날은 좀 떨리고 기분이 되게 좋았어요. 마치 TV를 켜고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신나게 떠들었던 기억이 나요. 많이 웃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안성기 선배님을 멀리서 뵈었는데, 꼭 눈을 마주 보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라고 얘기했잖아요. 하하, 맞아요.

예전에 배우가 되고 싶어서 장진 감독을 찾아갔다는 얘기도 그렇고, 그럴 때 당찬 모습이 보인달까요? 어떻게 말하면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아주 먼 환상처럼 느끼는 게 아니라 사람을 조금 더 가깝게 느끼는 것 같아요. 가서 아주 짧은 한마디나 눈빛을 통해서라도 호감과 에너지가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선물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존경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또 흩어져 버리면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Jacket SAINT LAURENT. Shirts STUDIO NICHOLSON by 1LDK SEOUL. Denim Pants LEVI’S VINTAGE CLOTHING. Loafer UNIPAIR.

표현을 잘 하는 편인가요? 정말 안 믿겠지만, 웃는 것, 우는 것, 고마움의 표현도 잘 못 하는 성격이었어요. 스무 살 되고 그해 겨울 때쯤에 연기를 처음 배우고 그게 아주 많이 바뀌었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고 들었어요. 그게 저한테는 중요한 약속이자 억압돼 있던 목표였어요. 사춘기도 늦게 온 것 같은데, 자꾸 목표를 못 이루는 상황이 오니까 자존감이 아주 밑까지 떨어졌던 것 같아요. 신경이 예민할 땐 시계 초침 소리 듣는 것도 버거웠어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좋은 영화를 찾아보거나 사진 찍으러 밖에 돌아다녔어요. 살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생의 의지가 되게 강했던 거죠.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조앤 디디온이 한 칼럼에 쓴 문장이 생각나요. 오, 궁금해요.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책임 지려는 의지는 자존감의 원천이다.’ 아, 그 말 꼭 기억하고 싶어요. 연기하고 나서는 제가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삶의 목표가 재설립된 거예요. 요즘엔 스스로 제 마음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을 계속해서 꿈꾸고 바라고 희망하고. 마냥 이상적인 말일 수 있는데, 전 되게 불안에 휩싸였던 사람이었으니까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해 보니까 어때요? 너무나 불안정하지만, 늘 좋은 것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려요. 기다리는 게 마냥 수동적인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제 인생을 잘 가꾸어 나가다 보면 좋은 일을 만나게 되고. 그래서 연기하는 배우의 인생과 저라는 사람의 인생이 조화롭고 건강하게 걸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전에 영화 보면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었어요? <폭스 캐처>를 정말 좋아해요. 주인공 세 명 중 어느 하나를 맡더라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의 질투, 야망, 내가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거기에 마음이 잘 뺏기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때 느낀 비참한 감정이라든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을 잘 알 것 같아요.

남자 캐릭터를 말해서 의외네요. 나탈리 포트먼이 연기한 <클로저>의 앨리스, <블랙 스완>의 니나 역도 좋아요. 사랑이라는 감정, 집착, 갈망이 뒤엉켜 있는 걸 해 보고 싶어요. <마스터>의 호아킨 피닉스도. 마지막에 그의 표정. 눈에 눈물이 고이면서 다양한 감정의 얼굴이 보였어요. OST도 진짜 좋아해요.

요즘은 어떤 음악을 자주 들어요? 요즘이요? 음악 어플에 라디오가 있잖아요, 거기서 클래식 채널 라디오를 자주 틀어 놨어요. 가사 없는 음악을 듣고 싶어서 그랬는데, 제목을 모르겠네요. 하하.

 
 

Coat RECTO. Slip Dress BEAKER. Necklace 1064 STUDIO. Sneakers CONVERSE.

이번 겨울에는 여행 계획 있어요? 아직 없어요. 엄마랑 같이 여행해 본 적이 없어서 한 번 가 보고 싶어요.

어떤 기사에서 어머니 얘길 했던 게 기억나요. 어머니가 딸 덕분에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러서 행복하게 살이 빠졌다고. 그 말이 참 예뻤어요. 엄마는 이따금 저를 많이 울게 해요. 음… 엄마한테 평생 미안하고 고마워서, 앞으로도 잘 살려고 애쓸 것 같아요. 엄마가 노력한 세월을 아니까. 당신이 너무 멋지게 잘살고 있으니까 저도 같이 멋지게 노력하고 싶어요. 엄마가 일하는 걸 되게 즐기시거든요. 워커홀릭 스타일이에요. 아, 아닌가. 엄마의 생활을 내가 긍정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건가. 하하. 모르겠어요. 최선을 다해 현재를 즐기며 사는 사람 같아요. 그 마음을 배우고 있어요.

새해에는 엄마와 같이 다녀 오세요. 네, 더 따뜻해지고 봄이오면 꼭.

Fin.

Hair & Make up — HYUNSEOK CHAE @chaetist
Assistant – WONYOUNG JANG @vvyjang, KKOTBUNHONG HUH @kkottt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