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of America

재즈가 생겨나고 어느 때보다 빛났던 때. 재즈로 이은 미국의 초상.

Write — DUKHO HWANG @barco_man
Illustrate — JIEUN YANG @zzz.jpg
Edit — HYEWON JUNG @sentence.dance

1차 세계 대전, 유럽의 전장에서 미국의 군악대 ‘지옥의 전사들’이 연주한 음악은 오늘날의 재즈와 닮았다. 음악은 미시시피 강을 타고 전해져 시카고에 닿았다. 작가들은 선율에 가사를 붙이고, 음악가는 박자를 맞춰 연주했다. 빌리 홀리데이는 노래하며 미국의 잘못된 현실을 고발했다. 데이브 브루벡은 재즈 음악으로 반미주의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재즈’는 시간을 살피며 역사를 기록했다. 미국의 역사와 동행한 재즈 음악 여덟 곡을 적어 본다.

369th U.S. Infantry Hell Fighters Band ‘Memphis Blues’, 1917-1919
1차 세계 대전을 통해 재즈가 모습을 드러내다

1917년 1차 세계 대전, 유럽의 전장(戰場)으로 파견된 미국 군대 가운데는 아프리카계 병사들만으로 이뤄진 369 보병단이 있었다. 그 군악대 역시 아프리카계 출신의 제임스 유럽 대위가 이끌었다. ‘지옥의 전사들’이라고 불린 이 군악대의 연주를 완전한 재즈라고는 부를 수 없었지만 재즈의 화성, 리듬, 연주 형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럽 사람들은 그 음악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은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에 충격의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Bix Beiderbecke ‘Georgia on My Mind’, 1930
굿바이, 재즈 세대

뉴올리언스의 지역 음악이었던 재즈는 1910년대부터 미시시피 강을 타고 전해져, 북상해 중부 시카고에서 1920년대의 스타 빅스 바이더벡을 탄생시켰다. 금주법이란 이름으로 술에 절어 흥청거렸던 1920년대.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시기를 ‘재즈 시대(Jazz Age)’라고 불렀다. 하지만 1929년 뉴욕 증시의 폭락으로 거품은 꺼졌고 이 시대를 상징하던 빅스는 새로운 대편성 재즈에 적응하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1931년 눈을 감았다. ‘Georgia on My Mind’는 1930년 빅터 레코드에서 녹음한 그의 마지막 연주반.

Billie Holiday ‘Strange Fruit’, 1939
인종주의를 고발하다

1865년 미국에서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노예제의 존속을 지지하던 미국 남부 11개 주는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 분리를 합법화하는 새로운 인종차별 법을 만들었다. 소위 ‘짐 크로 법’이라고 불리는 이 악법은 새로운 인종차별 시대를 열었다. 심지어 흑인에 대한 폭력은 노예제 이후에도 남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1939년 빌리 홀리데이가 ‘Strange Fruit’을 통해 이 현실을 고발하자 여러 방송국에서 이 노래를 서둘러 금지했지만, 이 노래는 오늘날도 여전히 미국에 경종을 울린다.
Glenn Miller ‘St. Louis Blues March’, 1943-1944
2차 세계 대전, 스윙이 애국심을 불어넣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두 번째 세계 대전에 개입하게 되었다. 이때 실시된 전시 체제와 징집제도는 미국 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남성을 대신해 여성들의 취업, 사회활동이 늘어났고,1930년대 격렬했던 빅밴드 스윙음악은 차분한 발라드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글렌 밀러는 군에 자원입대해 빅밴드를 결성했다. 그는 미군 주둔지를 돌며 스윙으로 미군과 국민들을 위로했다. 당시 녹음은 파업 중이던 민영 음반사를 대신해 미 국방부가 제작한 V-디스크를 통해 발매되었다.

Art Pepper ‘Surf Ride’, 1956
수소폭탄, 비키니, 재즈

2차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대공황 이후의 장기 침체를 완전히 벗어나 세계 패권 국가가 되었다. 1945년에 개발된 핵폭탄과 1954년에 개발된 수소폭탄은 미국의 권력을 더욱 강화했다. 동시에 1950년대 개방된 성(性) 문화는 청교도적 가치관에 결정타를 날렸는데, 이때 유행한 수영복의 위력을 사람들은 수소폭탄을 실험했던 태평양의 섬 이름을 빌려 ‘비키니’라고 불렀다. 이 모든 것은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대표 주자 아트 페퍼의 앨범 <Surf Ride>를 통해 대변되었다.

Freddie Redd ‘Time To Smile’, 1960
헤로인, 비트 세대의 상처

1940년대 애국주의와 1950년대의 호황은, 그러나 미국의 일면에 불과했다. 1940년대부터 헤로인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급격히 번져나갔고 이들 ‘비트세대’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혐오했다. 1931년에 빅스가 알코올로 떠난 것처럼 1955년 찰리 파커는 헤로인으로 급서했다. 1959년 연극 ‘The Connection’은 헤로인에 중독된 젊은이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무대 위에 올렸다. 이듬해 영화화된 이 작품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프레디 레드가 모든 음악을 담당했다.

Dave Brubeck ‘The Real Ambassadors’, 1962
재즈, 반미주의와 맞닥뜨리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은 문화 경쟁으로 확대됐다. 그 결과로 1956년 미국 국무부는 미국의 재즈 음악인들을 세계 각지에 파견했는데, 이때 그들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미운동과 마주했다. 국무부가 파견했던 음악가 중 한 명이었던 데이브 브루벡은 1962년 앨범 <The Real Ambassadors>에서 미국 팽창주의가 키운 반미운동에 대해 재즈 음악인들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자평했다. 국제 정치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이 앨범은 한동안 논란에 휩싸였다.

Grant Green ‘His Majesty King Funk’, 1965
아프리카계 미국인, 행진하다

‘짐 크로 법’에 의해 실시되었던 남부의 인종별 버스 좌석 분리 제도는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의 버스 승차 거부운동을 촉발시켰다. 10년 뒤 인근 도시 셀마에서는 흑인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법령을 타파하기 위해 대규모 행진이 일어났다. 이 10년 동안의 운동의 중심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있었다. 1965년 셀마 행진이 시작되자 이는 곧바로 재즈에 반영되었다. 기타리스트 그랜트 그린의 <His Majesty King Funk>은 그 대표작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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