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LABEL | Herschel Supply

MEET THE LABEL | Herschel Supply

이태원에서 허쉘 서플라이의 매니징 디렉터 제이미 코맥을 만났다.

Edit — TAEIL PARK @taeilpark
Photo — YUNSUNG GO @yskgo

제이미 코맥은 자기를 허쉘 서플라이의 CEO라 칭하는 걸 꺼렸다. 오히려 매니징 디렉터에 가깝다고 말했다. 얼핏 진중한 사업가 같지만, 인생의 크고 작은 경험을 창조적 결과물로 승화시키는 예술가이기도 한 덕분일 거다. 새로 문을 연 ‘허쉘 서플라이 서울’ 건너편 카페 창가에 앉아, 신기한 듯 아이폰으로 매장 사진을 찍기도 했다.

                  

 
 

서울은 처음인가? 아니,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엔 일로, 그다음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왔었다.

이번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뭘 했나? 밤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고 근처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뭘 먹었나? 호텔 근처에서 프라이드치킨을 먹었다. 맥주도 한잔했고. 아, 그리고 한국식 국수집에서 국수를 먹었다. 진짜 맛있었다.

그렇듯 당신은 지금 대한민국 서울에 와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 한 가지와 가장 이상한 것 한 가지는 뭔가?
와우, 잠깐 생각 좀 해보자. 일단 흥미로운 건 도시가 정말 에너지가 넘친다는 거다. 에너지는 항상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고 온다. 뒷골목 어디를 가도, 심지어 길을 잘못 들어도 예기치 못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한 건, 이렇게 사람이 많은 도시가 어떻게 이 정도로 깨끗하게 유지되냐는 거다.

당신이 살던 ‘허쉘’과는 많이 다른가? 완전히 다르다. 일단 서울 인구는 1천만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허쉘은 30 여명 정도가 산다. 거기선 아무리 어린 애라도 집에서 나가든 말든, 나가서 어딜 가든, 무얼 하든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행선지를 말할 필요도 없이 무얼 하든 안전하다. 정말 자유로운 곳이다. 그 특유의 자유로움을 브랜드에 담고 싶어 브랜드 이름도 ‘허쉘’이라 지은 거다.

‘자유를 가방에 담는다’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 동생인 린든 코맥과 함께 브랜드를 이끄는 중인데, 우린 사고방식이나 방향성이 정말 잘 맞는다. 그래서 시장에 어떤 제품을 내놓을지에 대한 합의가 아주 잘 되기도 한다. 우리가 함께 믿는 가치는 ‘레스 이즈 모어’. 많은 것이 주어지는 게 자유는 아니다. 자연이라는 단순한 가치를 만끽하는 것이 동생과 내가 고향 마을 허쉘에서 누린 자유였다. 굉장히 전통적인 디자인에 실용성과 참신함을 더하는 게 우리가 가방을 만드는 행위의 전부다.

허쉘 서플라이의 대표 가방인 ‘리틀 아메리카’를 보면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옛날식 외형을 가진 가방을 현대적인 장치와 실용적인 소재로 만든다는 대비는 허쉘 서플라이의 가치를 대변한다 생각하기도 했고. 정확히 이해했다. 자유에 실용을 더하는 게 허쉘 서플라이 다운 접근이다.

그 작은 마을에서 자란 청년이 이제 이렇게나 큰 브랜드의 수장이 됐다. 그런 당신이 직업으로 처음 시작한 일은 뭐였나? 근처 해변에서 보트에 기름을 채우는 일. 16살 때 아르바이트로 한 건데, 덕분에 꽤 흥미로운 소식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어디에서 정말 ‘핫’한 파티가 열리는지, 이 동네 예쁜 여자들이 지금 어디에 주로 모이는지. 난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정말 좋은 일자리였다.

그럼 옷이나 가방과 관련된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스케이트보드 숍에서 매니저로 일을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 어릴 때부터 줄곧 스케이트보드를 타왔고, 겨울엔 꼭 스노우보드를 즐겼다. 거기서 일하게 된 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계속 일을 하면서 조금씩 다른 업무도 맡게 됐다. 물류를 관리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유통 과정까지 관여하게 됐다. 브랜드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가기 시작한 거다. 그러고 5년 뒤에 ‘K2 스포츠’의 세일즈 팀에 들어가게 됐다.

그렇다면 왜 사업을 시작했나? 항상 언젠가는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뭘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고 나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하기도 했고. 하지만 생각해보니 직접 하지 않을 거라면 간섭할 필요도 없다 싶었다. 동생과 오래 고민하고 계획하다 비로소 그걸 실행에 옮기게 된 거다.

처음 시작한 사업이 허쉘 서플라이였나? 아니다, 놀랍게도 잡지를 만드는 것이 내 첫 사업이었다.

잡지라고? 무슨 잡지였나? 스케이트보드 컬처를 다룬 잡지였다. 오래전 일이고, 아주 작은 잡지였다. 이름은 ‘시퀀스’였고. 물론 지금은 만들지 않는다. 세일즈 에이전시를 시작하면서, 다른 회사에 인계했다.

흥미로운 얘기다. 지금도 다른 사업을 병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 버지니아에 기반을 둔 온라인 리테일러 ‘니드 서플라이’와 시애틀과 뉴욕에 매장을 둔 ‘토토카엘로’라는 편집 매장을 함께 운영한다. 니드 서플라이는 도쿄에 매장을 내기도 했다.

니드 서플라이에서 종종 옷을 주문하고 시애틀과 뉴욕을 가면 토토카엘로를 꼭 들르기도 하는데, 허쉘 서플라이를 포함한 세 가지 비즈니스는 아주 다르다. 그 셋을 병행하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나? 셋은 정말 다르다. 덕분에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게 된다. 패션을 사랑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걸 즐긴다. 그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는 것 또한 정말 유익한 일이다.

어쨌든 당신은 성공한 사업가다. 회사원과 자영업, 한국 남자들의 끝없는 고민 중 하나인데, 혹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직원으로 일하는 건 좋은 점이 많다. 안정적이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기에 좋은 성격이나 가치관,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볼 의향만 있다면 해볼 만하다. 사실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미 있는 만큼 감당해야 할 것도 많다. 모든 사업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앞에서 보이는 것과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대개 그 둘 중 하나는 간과하곤 한다. 둘 다 잘 해야 한다.

허쉘 서플라이만의 장점을 딱 세 가지만 말한다면? 정말 세 가지만 말해야 하나? 좋다. 첫 번째는, ‘가족 경영’. 동생과 나는 가족이기 때문에 더 편하고 솔직하게 도전하거나 소통할 수 있다. 이건 정말 브랜드에게 긍정적이다. 덕분에 허쉘 서플라이가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사람들’. 우리 팀은 최고다. 항상 창의력이 넘치고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그런 팀과 일한다는 건 나에게도 영광이고 브랜드에겐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일이다. 세 번째는 ‘글로벌 브랜드’. 브랜드와 앞과 뒤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것을 만든다. 우리는 허쉘 서플라이의 출신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명함엔 주소도 없다. 허쉘 서플라이는 캐나다 브랜드가 아니며, 전 세계가 우리 고객이다. 그런 마음가짐은 우리 제품을 어느 도시에서도 편견 없이 보이게 해준다.

그렇다면 가장 큰 단점은 뭔가? 흥미로운 질문이다. 좋아, 거의 없지만 하나만 말하자면, 오프라인 매장을 너무 늦게 열었다는 거다. 한국에 들어온 것도 4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매장을 열지 않았나? 우린 더 빨리 지구 곳곳에 매장을 열었어야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먼저 허쉘 서플라이를 직접 만지고 피부로 느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린 좀 더 멀리 가 있었을 거다.

갑자기 궁금한 게, 동생과 싸울 일은 없나? 가족과 일하는 게 의외로 쉽지 않을 수 있으니까. 왜 없겠나. 정말 자주 싸운다. 하지만 5분만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원점으로 돌아온다. 가족이 좋은 건 바로 그런 거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길로 가는 바탕이 된다. 동생은 좀 더 역동적이고 언변이 좋아 세일즈를 담당하고, 나는 좀 더 세심해 디자인 같은 좀 더 세부적인 사항들을 담당한다. 그렇게 역할 분담도 참 잘 되는 편이다.

그런 동생을 둔 건 어쩌면 행운인 거다. 정말 그렇다. 하지만 내가 좀 더 잘생겼고, 힘이 세며, 형인데도 더 어려 보인다. 동생이 두 살 반 정도 어리지만 다섯 살은 더 들어보인다. 같이 있으면 친구로 보기도 한다니까?

 
 

허쉘 서플라이는 협업을 종종 해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뭐였나? 스투시와의 협업은 항상 자랑스러운 일이다. 처음 협업한 브랜드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건 스투시니까.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스투시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두 번째는 클락스. 클락스 데저트 부츠는 즐겨 신는 신발이기도 하고 그들의 브랜드 색깔을 정말 좋아한다. 거기에 우리 색깔을 덧입히는 게 정말 즐거웠다.

언젠가 꼭 함께 해보고 싶은 브랜드가 있나? 전혀 계획에 없더라도. 음, 글쎄 너무 많은데. 해볼 수 있다면… 파텍 필립과 하고 싶다. 우리가 새로 디자인한 파텍 필립 시계를 만드는 거다. 그리고 랜드로버 디펜더. 정말 최고의 차다. 빈티지 디펜더를 실제로 갖고 있기도 한데, 허쉘 서플라이만의 느낌으로 디펜더를 만들어본다면 정말 행복할 거다.

허쉘 서플라이 서울이 방금 열렸다.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마침내.’ 처음 한국에 오자마자 든 생각은 아, 여기에 우리 매장을 열어야겠다, 였다. 드디어 그걸 이뤘다. 들뜨고 흥분된다.

이곳에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있나? 한국 고객들로부터 ‘진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 어떤 게 흡족하고 어떤 게 별론지 바로바로 알 수 있을 테니까.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빨리 적응하고, 이곳에 딱 맞는 제품을 만들어 내놓고 싶다.

매장에 올 사람들이 가장 눈여겨 봤으면 하는 건 뭔가? 여행용 가방. 형태와 색깔을 젊은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른 여행용 가방들관 다를 거다. 여행 자체가 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우린 다른 어떤 것보다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듣고 있자면, 오프라인 매장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는 것 같다. 요즘은 온라인 비즈니스와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모든 브랜드의 숙명이 되어버린 시대다. 이걸 극복하는 허쉘만의 방식은 뭔가? 균형을 이루는 거다. 온라인의 많은 방식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직접 물건을 보고 사는 걸 즐긴다. 그래서 우린 그 둘을 동등하게 중시하고 투자한다. 앞으로 더 많은 매장을 곳곳에 열 생각이다.

 
 

곧 당신은 집으로 돌아갈 거다. 당신이 사는 벤쿠버는 어떤 도신가? 단언컨대, 세계 최고의 도시다. 가장 큰 이유는 작다는 거다. 하지만 그 속엔 산과 바다, 자연과 도시, 모든 것이 있다. 여행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집에 있는 날엔 정말 집에만 있는다. 우린 시내에서 떨어진 딥 코브라는 바닷가 마을에 산다. 언덕 위라 바로 하이킹을 즐길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당장 바다에서 놀 수도 있다. 그리고 30분 차를 타고 나가면 온갖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인 세계적인 도시에서 일할 수도 있다. 또한 벤쿠버엔 훌륭한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있다. 아크테릭스, 윙즈 앤 혼즈, 레이닝 챔프, 룰루레몬…. 벤쿠버는 재능과 기술이 넘치는 사람들이 가득한 최고의 도시다.

벨보이의 당신 인터뷰를 읽는 누군가가 벤쿠버에 간다면, 그곳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여섯 군데만 추천해줄 수 있나? 벤쿠버에선 자연을 즐겨야 한다. 신나는 즐길 거리가 너무 많다. 일단 딥 코브와 휘슬러, 토피노에 가야 할 거다. 식당이나 카페를 가는 건 지루하다. 그래도 여행을 오면 또 다르니까, 소개는 해주겠다. 금방 생각은 안 나니 메일로 보내도 되나?

물론이다. 답장을 받는 대로 ‘컨시어지’에 올리겠다. 오케이. 자, 그럼 사진을 찍어볼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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