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merican Mood

My American Mood

여섯 개의 사물로 비추어 본 누군가의 아메리칸 무드.

Edit — HYEWON JUNG @sentence.dance
Photo — WOOYOUNG CHUNG @wooyoung_chung_

미국의 한 치과에서 사용하던 마이크. 어떤 음악가에겐 블루스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단편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온 브룩스 브라더스 로퍼, 도쿄에서 온 파타고니아 재킷. 출처는 각각 다르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장르가 다른 여섯 명이 자기만의 애호를 기울여 ‘아메리칸 무드’를 말한다.

                  

Cordovan Unlined Penny Loafers BROOKS BROTHERS

언제 어떻게 구한 물건인가? 유니페어 일을 시작한 이후 브룩스 브라더스의 코도반 구두 라인을 알든 슈즈가 생산한다는 걸 알았다. 국내 브룩스 브라더스 매장에 가끔씩 가 보았지만, 아무래도 수요가 적어서 그런지 원하는 모델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12년 여름, 알든 본사 출장길에 뉴욕에 잠시 들렀다. 그때 브룩스 브라더스 매디슨 에비뉴 매장을 방문해 드디어 내게 맞는 구두 사이즈를 찾았다. 미국과 관련된 그 어떤 것 중에서도 이 사물을 고른 이유. 미국을 상징하는 두 브랜드가 만든 ‘Made in USA’ 제품이다. 클래식 캐주얼을 좋아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최고’에 가까운 물건이 아닐까. 이 구두에서 알든 로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하지만 브랜드만의 캐릭터가 확실해서 감추려 해도 알든의 페니로퍼라는 것이 보인다. 라이닝이 없다는 점이 지금 출시되고 있는 알든의 페니 로퍼와 다르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두 브랜드는 미국의 복식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브룩스 브라더스와 알든은 존 F. 케네디, 아이비리그 등으로 대변되는 미국 백인 상류층이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브랜드다. 현재도 그 성격을 지키며 활동한다. 알든 슈즈의 사장님이 뉴욕으로 가족 여행을 갈 때면 언제나 브룩스 브라더스 매디슨 매장을 가장 먼저 들른다고 한다. 실제로 뵌 적도 있는데, 항상 옥스퍼드 버튼다운 셔츠에 레지멘탈 타이를 하고 회색 울 바지와 네이비 블레이저를 입고 계셨다. 또한 미국 패션 디자이너를 대표하는 랄프 로렌은 젊은 시절 브룩스 브라더스에서 일했었다. 그 시절, 현재 알든 사장님의 아버지인 전 사장님은 미팅을 위해 브룩스 브라더스에 갈 때마다 만들고자 하는 것에 관한 요구 사항이 대단했다고 한다. 브룩스 브라더스와 알든, 랄프 로렌. 모두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브랜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 사물 안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는 ‘아메리칸 무드’ 역사가 담긴 라스트를 사용해 만든 순수 미국제 물건. 페니 로퍼의 기준이 될 만한 정직한 디자인. 당신의 ‘아메리칸 무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 뉴욕 맨해튼의 어퍼이스트 지역에서 미술품을 파는 가게를 돌아다닌다. 파스트라미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거나, 동부 지역 아이비리그 캠퍼스를 다니면서 건축 양식을 구경하고 구내 서점에 가서 책을 본다. 학교 로고가 새겨진 스웨트셔츠를 사보는 것도 재미있다. 강재영. 유니페어 매니징 디렉터 @shoesnlife

‘Saul Leiter’ STEIDL

언제 어떻게 구한 물건인가? 이 책이 출간된 2008년 당시에는 사울 레이터라는 사진가를 몰랐다. 이후 2010년 즈음 사울 레이터와 더불어 이 책에 관해 알게 됐고, 2017년에 신혼여행으로 간 뉴욕의 한 헌책방에서 이 책을 만났다. 책 등에 적힌 ‘Saul Leiter’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책을 잡기 위해 손을 뻗던 내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다. 미국과 관련된 그 어떤 것 중에서도 이 사물을 고른 이유. 이 책을 말 그대로 ‘미국 물건’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독일’ 출판사 슈타이들과 ‘파리’에 있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협업하여 ‘뉴욕’의 사진가 사울 레이터의 작품을 담아 출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사진집이 1950년대에서 1960년대 뉴욕의 모습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물건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책은 미국의 예술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사울 레이터는 거의 평생을 뉴욕 로우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산 로컬 아티스트다. 뉴욕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승승장구하던 때도 있었지만, 금전적 어려움으로 1980년대에 스튜디오를 닫았고 그 이후 세상에 다시 알려질 일은 마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 그를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한 건 이 책을 만든 슈타이들의 영향이 크다. 슈타이들의 대표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은 2005년에 뉴욕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에서 열린 사울 레이터 전시를 우연히 보았다. 그는 사울 레이터의 제대로 된 모노그래프가 지금까지 출간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6년, 사울 레이터의 ‘Early Color’가 출간되었다. 사울 레이터를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책이다. 2년 후인 2008년, 사울 레이터의 첫 유럽 전시와 함께 그의 이름이 파리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것도 사울 레이터가 사진을 시작하는 데 큰 계기가 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재단에서! 그렇다면 사울 레이터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사울 레이터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한 가지 방식을 나에게 알려준 사진가다. 윌리엄 클라인, 로버트 프랭크, 다이안 아버스, 리 프리들랜더, 윌리엄 이글스턴 등 수많은 사진가들이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떤 이는 거칠게 현실을 담았고, 어떤 이는 기이한 풍경에 관심을 두었으며, 어떤 이는 세상을 위트있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가운데 사울 레이터는 가장 시적이면서 낭만적인 시선을 가진 사진가다. 세상의 단면인 한 장의 사진이 꼭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영화감독 토드 헤인즈가 영화 ‘캐롤’을 만들 때, 사울 레이터의 뉴욕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 책 안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는 ‘아메리칸 무드’ 이 책에는 ‘Canopy’라는 제목의 1958년 사진이 실려 있다. 캐노피는 가게에서 차양을 막기 위해 드리우는 천막이다. 사진의 사 분의 삼이 검은 캐노피로 가려져 있다. 사울 레이터는 그 천막 아래에서 눈을 피하며 서 있다가 이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사진 속에는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긴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팔에는 신문 한 부를 낀 채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모두 세련된 차림을 한 채 동행하는 이 없이 제 갈 길을 가기 바쁘다. 이러한 모습이 미국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한국 물건. 사진가 이정진의 사진 중 ‘Thing’ 시리즈 사진 혹은 이 사진이 담긴 사진집 ‘Echo’. 이 시리즈는 오래된 항아리, 의자의 등받이 같은 일상적인 사물을 여백의 공간 속에 담고 있다. 김진영. 이라선 디렉터 @irasun_jiin

Skil 100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서프보드의 기초가 되는 블랭크를 깎는 데 사용한다. 어떻게 구했나? 2008년도에 쉐이퍼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스킬 100을 알았다. 미국과 호주의 서프보드를 생산하는 곳에서 일하면서 처음 손에 얻었다. 미국과 관련된 그 어떤 것 중에서도 이 사물을 고른 이유. 오랫동안 변치 않고 그대로여서 좋다. 전기 대패는 원래 목공 용도로 만들어져 서프보드 쉐이핑에 활발히 쓰이기 전까지 내부 드럼이나 보디에 큰 변형이 없었다. 최근에는 무게가 가볍고 기능적으로도 개선된 제품이 많이 나오는데, 스킬 100은 모양과 무게, 그립감 등 모든 것이 처음 그대로다. 스킬 100은 미국의 서핑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서핑의 역사는 롱보드부터 시작한다. 이후 ‘숏보드 혁명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길이와 모양의 서프보드가 나왔다. 이에 따라 서프보드를 만드는 도구도 많이 달라졌다. 중국에서 쉐이핑 머신을 앞세운 공장형 서프보드 브랜드들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핸드 쉐이퍼들과 전통 있는 라미네이팅 공장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클래식 롱보드를 만드는 진 쿠퍼, 스킵 프라이와 마틴 쉐이프 등 핸드 쉐이퍼들은 여전히 스킬 100과 함께 해 오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캘리포니아 클래식 서핑 씬을 지속해서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스킬 100을 자주 사용하는가? 롱보드를 쉐이핑할 때만 쓴다. 스킬100의 길이나, 무게감이 롱보드 쉐이핑에 제격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 사물 안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는 ‘아메리칸 무드’ 어떤 쉐이퍼가 쉐이핑할 때 나는 소리를 ‘Sound of Dust’라고 표현했다.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핸드 쉐이퍼의 발자국 소리, 대패 소리,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아메리칸 무드이자 ‘오리지널 사운드 오브 더스트’다. 당신의 ‘아메리칸 무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 산타바바라, 샌디에이고, 벤투라, 코스타 메사 등 여러 핸드 쉐이퍼들의 작업장을 방문하면 ‘아메리칸 클래식 서핑 무드’에 흠뻑 젖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한국 물건. 한글로 새겨진 도장을 선물하고 싶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이들은 자신의 결과물에 이름을 꼭 남기고 싶어 하니까. 황은민. 서프코드 쉐이퍼 @blowindsurfboards

Lightnin’ Hopkins <Lightnin’ Hopkins> & Electro-Voice 636

언제 어떻게 구한 물건인가? 2009년부터 블루스 연주를 시작하면서 많은 블루스 뮤지션의 음악을 찾아 들었는데, 그중 이 앨범이 너무 각별했다. 2010년 8월에 이베이에서 샀다. 옛날 앨범이라 그런지 속지에 쓰인 설명이 아주 구체적이다. 어떤 마이크를 사용해 앨범을 녹음했는지까지 알 수 있다. 그걸 보고 2014년 후반에 미국의 한 치과에서 사용하던 동일한 마이크를 구했다. 미국과 관련된 그 어떤 것 중에서도 이 사물을 고른 이유. 1940년대에 활동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혼자 지내던 라이트닝 홉킨스를 다시 빛내 준 앨범이다. 이 앨범을 만들기 전 지난 몇 년간 홉킨스는 뉴욕 음반사의 요구에 따라 젊은 세대를 위한 일렉기타-밴드셋의 R&B 음악, 소위 ‘팔리는’ 곡을 양산했다. 그러면서 그의 명성은 점점 잊혀져 갔다. 앨범 속지를 보면 미국 블루스 음악의 역사에 관해 글을 쓰던 작가 사무엘 차터스는 라이트닝 홉킨스를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와 휴스턴을 5년간 돌아다녔다고 한다. 수소문하다 전당포까지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홉킨스가 맡긴 일렉기타를 발견해 그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 며칠의 설득 끝에 홉킨스와 함께 이 앨범을 제작했다. 앨범을 들으면 처음엔 다소 경직되고 느슨하던 연주가 점점 긴장이 풀리면서 능숙해지는 것 같다. 이 사물에서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미국의 정서와 풍경. 텅 빈 시골길에 놓인 큰 집,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들, 그 앞을 지나가는 빈티지 캐딜락. 라이트닝 홉킨스는 다른 뮤지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이 앨범을 듣다가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을 떠올리는 순간이 있다. 그의 1920년대 스타일을 홉킨스가 현재로 데려온 중요한 지점이다. 라이트닝 홉킨스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하고 미니멀한 연주다. 복잡한 연주 스타일을 모던하게 정돈해 지미 헨드릭스나 지미 반 등 일렉트릭 기타 세대에게 물려 주었다. 라이트닝 홉킨스를 알고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 이 앨범을 알기 전까지 녹음이란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빈방에서 한 대의 마이크로 녹음했다는 점이 무척 새로웠다. 일렉트릭 기타로만 알던 블루스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가끔 블루스 다큐멘터리를 보면 올드스쿨 래퍼들이 옛날 블루스 앨범을 찾아 ‘스웨그’와 랩의 기원을 찾기도 하던데, 나도 홉킨스의 스웨그에 물든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이 앨범을 듣거나 마이크를 자주 사용하는가? 앨범은 이제 자주 꺼내 듣지 않는다. 마이크는 작업실 책상 위에 두고 요긴하게 쓴다. ‘다시 날 받아주었네’라는 싱글에서도 사용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 사물 안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는 ‘아메리칸 무드’ 고난과 가난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 적당한 허세와 농담. 하헌진. 뮤지션 @haheonjin

Nelson Vails’s Print

포스터 속 인물은 누구인가? 넬슨 베일스. 지금은 은퇴한 미국 사이클계의 영웅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게임에서 경기중인 모습이다. 어떻게 구했나? 넬슨 베일스와 관련된 사이클링 모자를 먼저 알았다. 찾아보니 영화 ‘퀵실버’에서 본 사람이었다. 이후 작년에 미국에서 열린 핸드메이드 바이크 쇼에서 넬슨 베일스를 만났다. 직접 나와 포스터를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자전거샵을 하고 있다고 하니 샵 이름이 너무 귀엽다며 포스터에 사인을 해 주었다. 미국과 관련된 그 어떤 것 중에서도 이 사물을 고른 이유. 넬슨 베일스는 뉴욕에서 서류 배달 일을 하다가 선수가 되었다. 선수가 되어서도 일을 이어갔다. 일반인이 국가대표가 된다는 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흔치 않은 일이다. 누군가에겐 감흥이 전혀 없을 수도 있는 이 포스터가 나에겐 희망 그 자체다. 넬슨 베일스는 미국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넬슨은 빈민가인 할렘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은커녕 당장 하루를 먹고 살기 힘든 날도 있었다. 그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메신저를 시작했다. 무척 빨라서 ‘치타’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 자전거 생활이 그를 위대한 선수로 이끌었다. 사실 사이클은 백인이 상대적으로 많은 스포츠 종목이기도 하다. 요즘도 흑인 선수가 드물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아메리칸 무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 포틀랜드를 추천하고 싶다. 자연이 있는 도시고, 느린 듯하지만 그 속에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실제로 지역 복지가 대단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장인이 있어서 포틀랜드만의 브랜드를 접하는 재미도 있다. 그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카페로 가면 좋겠다. 자전거와 커피의 조합은 언제나 좋다. 텍사스는 아직 못 가 봤지만 좋아하는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텍사스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그들이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꼭 한 번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한국 물건. 우리가 운영하는 자전거 샵은 ‘핸드메이드’ 제품을 추구하기 때문에 한국의 장인이 손으로 만든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다. 도자기나 그 친구의 이름이 적힌 도장이 어떨까. 박하천, 김귀현. BIKE MAKES ME HAPPY 대표 @bikemakesmehappy

Reverse Pile Jacket PATAGONIA

언제 어떻게 구한 물건인가? 파타고니아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 인지도도 그리 높지 않았을 때 그저 일본에서 인기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라고만 알았다. 그때 파타고니아의 스테디셀러 아이템인 ‘Retro-x’라는 플리스 소재의 재킷이 눈에 띄었다. 가벼우면서 보온성도 좋아 여러 벌을 샀었다. 계속 찾아보다가 현재 디자인 이전 모델인 ‘Deep Pile Retro-x’ 재킷과 더 이전인 1970년대 초기 모델인 ‘Reverse Pile’ 재킷이 있다는 것까지 알았다. 이 옷은 일본 출장 때 도쿄의 한 빈티지샵에서 우연히 구했다. 미국과 관련된 그 어떤 것 중에서도 이 사물을 고른 이유. 파타고니아의 플리스 재킷은 ‘추운 날엔 겉옷 안에 플리스를 입어야지’라고 무조건 떠올릴 만큼 이 원단을 보온성 소재로 확실하게 알린 첫 모델이다. 최초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참신하다. 초기 모델인 이 재킷은 플리스의 원단이 안감으로 들어가 있다. 이 옷에서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미국의 정서와 풍경. 자연친화적인 환경. 요세미티 바위에 앉아 파일 재킷을 무심히 걸친 모습. 파타고니아는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그들의 경영 철학을 빼놓고는 이 얘기를 할 수 없다. 창립자 이본 쉬나르는 전문 클라이머였다. 암벽 등반에 필요한 피톤(등반 시 바위에 박는 못)이 필요해 직접 만들어 팔았는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실제로 파타고니아는 상업적 마케팅을 우선시하지 않는다. 오직 필요한 것만 만든다. 그러나 아무리 잘 팔리는 제품이라고 해도 환경 보존에 피해를 준다면 과감히 철수한다. 앞서 말한 피톤도 바위를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곧 판매를 중단했다. 그 후 이본 쉬나르는 알루미늄 너트라는 친환경 아이템을 만들었다. 레트로 엑스 재킷도 1993년부터 페트병을 재활용한 재생 폴리에스터 원단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 사물 안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는 ‘아메리칸 무드’ 이 재킷과 대너의 트레킹부츠, 필슨의 캔버스백, 리바이스의 데님 등에는 억지로 부리지 않은 멋이 담겨 있다. 기능과 필요에 충실하다 보니 투박하게 만들어졌다. 낡아도 자랑스럽고 자연스럽게 물려줄 수 있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한국 물건. 쌀쌀한 날씨에 빈티지 데님과 파일 재킷을 걸칠 줄 아는 친구라면, 한국의 군용 핫팩을 선물로 주고 싶다. 단연코 최고의 캠핑 아이템이다. 백구현. 와일드혹스 대표 @wildhogs_official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