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OM | Iowa House Hotel

작가 김유진이 여행지에서 머문 방.

Write — YUJIN KIM
Illustrate —
JIYE KIM @kamidamikim
Edit —
HYEWON JUNG @hyewonittoo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은 아이오와 대학 내에 있다. 마을 전체가 캠퍼스이기 때문에 곳곳에 도서관이나 미디어 센터, 스포츠 센터 등이 흩어져 있다. 대학 내에 있다는 말이 무색하긴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걸어서 30~40분 가량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 안에 영화관과 서점, 저렴한 옷가게와 꽤 가격이 나가는 캐시미어 전문 매장, 수제 파스타 레스토랑과 중동 음식점, 재즈 바가 들어차 있다. 그 너머는 전부 옥수수밭이다. 정해진 공간 안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시설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어, 마을 건설 게임의 현실판 같기도 하다. 공기는 맑고 거리는 깨끗하다. 몇 년 전 쇼핑센터에서 총기 사망 사건이 있었지만 이 정도면 치안도 안심할 만하다. 나는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에서 30여 명의 작가들과 두 달가량을 머물렀다. 225호였다.

호텔 앞으로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방에 도착하자 문 맞은편 책상 옆으로 난 창문이 눈에 띄었다. 블라인드가 내려진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침대 옆에 캐리어를 내려놓은 뒤 가장 먼저 창문을 열었다. 호텔 앞으로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내 방은 강 반대편에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건물의 환기 장치로 보이는 설치물의 지붕이 보였다. 게다가 맞은편 건물에 막혀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날이 맑은데 햇빛 한 점이 들어오지 않는다니! 나는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놓쳐 작가 중 가장 늦게 호텔에 도착한 데다, 현실 순응적 인간이었으므로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창문은 환기를 위해서만 잠시 열어 놓을 뿐, 언제나 닫아 두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를 확인하려면 시계를 봐야 했다. 날이 맑은지 흐린지를 알려면 밖으로 나가야 알 수 있었는데, 기온 차가 큰 지역이라 늘 낭패를 봤다. 반소매를 입고 나갔는데 어처구니없이 추워서 다시 옷을 가지러 들어와야 하는 일이 무한히 반복되었다. 호텔은 중앙 냉난방 시스템으로 방안에서 온도 조절이나 습도 조절은 불가했다. 그나마 숨통이 트였던 것은, 빗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이었다.

빗소리가, 마치
멀리서 누군가 던진 쪽지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아이오와는 가을이면 긴 우기가 찾아왔다. 2주 내내 비가 왔다. 어두워질 무렵이면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고, 낮이면 잠깐 해가 비췄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온종일 비가 내렸다. 사흘 내내 폭우가 내려 외부 일정을 포기한 채 방에서 머무른 적도 있었다.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 옆으로는 아이오와 대학 기념관이 있었는데, 몇 해 전 홍수로 물에 잠겨 보수공사를 했다고 누군가 알려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 비가 계속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아름답게 단풍이 들었던 나뭇잎들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갔다. 젖은 낙엽 때문에 길이 온통 노랗고 붉었다. 구조물 위로 비가 타닥타닥 떨어지는 소리를 듣거나 창에 가까스로 맺히는 물방울 같은 것을 보면서, 이 방이 자연으로부터 완벽히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블라인드를 창틀 끝까지 올려두었다. 빗소리가, 마치 멀리서 누군가 던진 쪽지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평소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데 음악도 조금 들었다. 그즈음이 마침 쇼팽 콩쿠르가 열리던 때여서 내내 인터넷으로 중계 영상을 켜 두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가, 이 좁은 호텔 방에서 머문 중 가장 행복했다. 이끄는 소리,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 내가 나 혼자만이 아님을 자각할 수 있게 하는 소리, 작은 방 너머로 바깥의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때야 비로소 느껴지는 풍요로운 행복감이었다.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의 체류 막바지 즈음, 다른 작가의 방에 들른 일이 있다. 방문을 여는 순간 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맞은편 열린 창문 너머로 푸른 하늘이 넘실대고 아이오와의 강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상상했던 호텔 방의 모습이 현실로 구현된 것을 바라보며,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어두운 내 방문을 열며, 조금 웃음이 났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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