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OM | Maui Campervan

작가 이장욱이 여행지에서 머문 방.

Write — JANGWOOK LEE
Illustrate —
JIYE KIM @kamidamikim
Edit —
HYEWON JUNG @hyewonittoo

방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방을 끌고 다녔다. 그러다 방을 세워 두고 밥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고 잠들기도 했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또 방을 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방에 시동을 걸고 방에 달린 바퀴를 움직여서 도로를 달렸다. 달리는 방의 바깥으로 낯선 산과 벌판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중형 캠퍼밴을 빌려 뉴질랜드의 남섬을 여행하고 있었다. 캠퍼밴이라는 것은 캠핑카의 뉴질랜드 식 이름이다. 승합차는 승합차인데, 차 안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어서 침대와 부엌과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침대를 접으면 소파와 작은 탁자가 생기고, 부엌에는 싱크대와 전기레인지와 미니 냉장고가 설치돼 있으며, 소형 화장실에서 용변은 물론 샤워까지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멋져 보이겠지만, 아무래도 이 방은 움직이는 방이기 때문에 좀 옹색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팔을 벌리면 화장실에 왼팔을 넣은 채로 부엌에 오른팔이 닿고, 침대에 누우면 두 발이 부엌 싱크대에 닿는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는 방이 바람에 흔들리는 통에 깨어나기도 하고, 소형 난방기 하나로 밤의 추위를 몰아내야 한다. 우리는 한국의 뜨거운 여름을 떠나 뉴질랜드의 겨울을 여행하고 있었다. 비수기의 남섬은 적막하고 스산했다.

캠퍼밴이니까 길가 아무 데나 세워두고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제법 크기가 크기 때문에 도심에 들어갈 수 없고, 이런저런 선이 필요하므로 따로 전용 주차공간이 필요하다. 홀팍은 홀리데이 파크의 준말인데, 캠퍼밴 여행자들을 위한 전용 주차장을 일컫는다. 홀팍에 캠퍼밴을 세워두고 여기저기 설치돼 있는 전선을 차에 연결해야 한다. 방이라는 것은 원래 조용할 때조차도 우리 몰래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게 마련이다. 물과 전기를 공급하고 생활 하수와 용변 오수를 배출하고 난방과 단열과 냉방까지 처리하느라 바쁘다. 우리가 자고 있을 때도 방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을, 캠퍼밴은 온몸으로 알려준다.

남섬에 와서 캠퍼밴을 빌려
다니기로 한 것은 만용이었다.

북섬에서는 소형 닛산 승용차를 렌트해서 다녔다. 마음 내키는 대로 달리다가 도시 외곽의 작고 저렴한 모텔을 골라잡아 숙박하는 식이었다. 해안길도 달리고 산길도 달렸다. 아무 데나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담배를 피웠다. 그게 좋았다. 남섬에 와서 캠퍼밴을 빌려 다니기로 한 것은 만용이었다.

나는 사실 귀차니스트답게 운전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으며 주차를 싫어하고 기계치인 데다가 길눈이 어둡다. 내가 몰아본 유일한 차는 2010년형 쏘울뿐이다. 작고 아담한 차다. 다른 종류의 차량은 몰아보지 않았다. 그런 내가 길이 7미터, 높이 3미터짜리 중형 버스 크기인 데다 운전 시스템도 전혀 생소한 마우이 캠퍼밴을 빌리기로 하고 예약까지 해버렸다니. 게다가 뉴질랜드는 영국이나 일본처럼 왼쪽으로 주행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 기계치에 귀차니스트로서는 무리한 계획이었다.

과연, 이 거대하고 낯선 기계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줄 리 없었다. 처음 캠퍼밴을 빌려 도로로 나오자마자 다른 운전자에게 퍼킹 어쩌고 하는 욕설을 들은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크라이스트처치 근교의 홀팍에 주차를 하다가 기어이 작은 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코너링 감각이 생소해서 바위를 긁었고, 덕분에 차량의 오수 배출 호스가 박살났다. 우리는 커다란 차를 끌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대여업체로 돌아가야 했다. 사고 경위서를 작성하고 차를 수리하고 다시 도로로 나왔을 때는 날이 어두워가고 있었다. 우리는 출발도 하지 못한 채였다.

여행 막바지에는 절벽을 낀 1차선 산복도로를 오래 달렸다. 그런데 차가 이상했다. 직진을 하는데 자꾸 왼쪽으로 쏠리네. 왜 이러지, 나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왼쪽으로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퀸즈타운으로 가는 그 아름다운 길은 적어도 내게는 호러 풍의 이미지로 기억될 것 같다. 바퀴에 펑크가 나 공기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캠퍼밴 같은 커다란 물건을 처음 몰아보는 나로서는 그냥 차가 무겁고 내가 운전을 잘못해서 한쪽으로 쏠리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방의 바깥으로
고요하고 적막하면서도 화려한
사진엽서 속의 이미지들이
끝도 없이 흘러갔다.

하긴, 우리는 신선한 트러블을 겪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절벽으로 추락하지 않고 그 길을 통과한 것은 뉴질랜드의 풍경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많은 경우 방의 의미는 방 자체가 아니라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있다. 과연, 방의 바깥으로 고요하고 적막하면서도 화려한 사진엽서 속의 이미지들이 끝도 없이 흘러갔다. 우리는 거기에 음악을 입히기만 하면 되었다. 흰 눈이 산악을 수놓고 강과 호수는 미동도 없이 햇살을 받아내고 있었다. 겨울의 남섬은 이렇게 혼자 빛나고 있구나. 이런 것이 남반구의 겨울이구나. 여기에는 지지고 볶는 인간의 삶이 최소화되어 있구나. 저 혼자 울울하고 고고하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풍경은 풍경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풍경에 무심한 인간이다. 풍경은 풍경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풍경보다는 언제나 인간들의 희로애락에 마음이 간다. 어느 나라에 가든 이국적인 절경보다는 도시 뒷골목의 선술집 쪽에 끌린다. 유적지보다 마트와 상점을, 관광지보다 주거지를, 숭고한 자연경관보다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소소한 밤 풍경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나는 구제불능의 모더니스트가 틀림없는 모양이다. 모더니스트는 숭고를 원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방에 앉아 바라보는 남섬의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나는 내내 감탄했지만 글을 쓰지는 않았다. 저런 풍경 앞에서는 글을 쓸 필요가 없다. 글이란 언제나 균열과 이질감과 불완전함의 산물이다. 저 풍경은 그냥 그 자체로 완전하고 자족적인 것이어서, 저 끝없는 풍경에게는 인간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렇게 멍하니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우리는 방을 세워두고 그 안에서 조금씩 취해갈 뿐이었다.

                  

여행지의 방에 관한 에세이, ‘THE ROOM.’ 각각의 방에는 완벽하게 다른 얘기가 존재합니다. 이번에는 이장욱, 정세랑, 정지돈 작가의 글을 담았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