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OM | Nakameguro Apartment

THE ROOM | Nakameguro Apartment

작가 정지돈이 여행지에서 머문 방.

Write — JIDON JUNG @zdone
Illustrate —
JIYE KIM @kamidamikim
Edit —
HYEWON JUNG @hyewonittoo

‘메구로 구에 속하는 나카메구로는 뚜렷한 개성을 지닌 지역입니다. 메구로 강을 끼고 있어 살짝 유럽 느낌마저 듭니다. 커피 타임에 잘 어울릴 아트 북을 뒤적이고, 행상에게서 빈티지 양복을 사는 등 여유로운 일상을 살아볼 수 있는 동네입니다.’ 한 에어비앤비의 나카메구로 소개다. 배경 화면은 일드에 나왔다는 벚꽃이 핀 메구로 강의 풍경이다. 2016년 3월 말, 나카메구로에 갔을 때는 벚꽃이 한창이었고 벚꽃의 수만큼 사람도 많았다. 나는 벚꽃 시즌에는 절대 일본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카메구로를 다시 찾은 건 2017년 2월 초다. 이번에는 일본의 아파트먼트에서 꼭 잠을 자겠다고 생각했고(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먼트’라고 해야 한다) 에어비앤비로 적절한 곳을 찾았다. 조건 1. 지나치게 세련되지 않을 것. 조건 2. 지나치게 숙박업소 같지 않을 것. 조건 3. 오래된 아파트일 것(가장 중요).

후보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가 찾은 곳은 나카메구로에서 다이칸야마로 가는 방면의 도로에 면해 있는 14층짜리 아파트로 다른 건물에 가려 대로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육교가 있었고 도로 아래로 내려가면 나카메구로 중심가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도쿄의 아파트먼트란 말이야.
한국의 아파트가 아니라.

“완벽해.” 나는 상우에게 말했고 상우는 고개를 저었다. “에어비앤비는 아니에요.” 상우는 대만에 있었다. 그는 대만에서 도쿄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굳이 왜?’라고 생각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러나 상우는 내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외국에서 외국으로 이동하는 것. 그게 제가 원하는 삶이에요. 아무튼, 에어비앤비는 안 돼요.” 재차 말하는 상우의 목소리가 끊겨서 들렸다. “왜요? 일본에서 에어비앤비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에요.” 나는 고민해보겠다고 하고 그냥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도쿄의 ‘아파트먼트’란 말이야. 한국의 ‘아파트’가 아니라.

나는 일본 아파트먼트의 타일 벽을 사랑한다. 외부 계단을 사랑하고 현관을 사랑하며 엘리베이터와 발코니를 사랑한다. 그러니까 잠시나마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숙박업소가 아닌 곳에서, 현관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주민과 마주치면서 말이다.

주민과 마주치긴 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게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집이 더러웠다는 사실이다. 천장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벽지는 습기로 울었으며 담 소재의 이불은 지저분했고 베개 청은 미국 국기였다. 뭐야 이건. 짐을 풀고 처음 한 건 화장실 청소였다. 검은 수챗구멍에서 머리카락을 한 다발은 걷어냈다. 화장실 청소를 끝낸 뒤에는 샤워실의 반투명한 유리문을 닫고 샤워를 했다.

어둡고 축축한 방에
안개 같은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발코니에 누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아파트 특유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에만 있는 소리가 아니네. 어디서 나는 소리지. 나는 샤워를 하다 말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둡고 축축한 방에 안개 같은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발코니에 누가 서 있는 것 같았다. 흠칫했지만 기분 탓이겠지 생각했다. 다시 보니 건너편 집의 발코니에 누가 서 있었다. 꼭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보일 리가 없잖아. 나는 다시 샤워실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았다. 왠지 불안해서 샴푸를 할 때도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이 따끔거렸지만 억지로 참았다.

상우는 이틀 후에 왔다. 우리는 나카메구로 역 입구의 츠타야 서점에서 만났다. 상우는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꼴이 왜 이래요?” “대만에 있는 내내 비가 왔어요.” 그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카키색 트렌치 코트를 벗고 침대에 누웠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우선 좀 잘게요.”

나는 상우를 두고 나와 걷기 시작했다. 나카메구로에서 아오바다이를 지나 요요기 공원을 거쳐 메이지 신궁까지 걸었다. 너무 많이 걸어 메이지 신궁에 도착할 때쯤에는 발바닥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체력을 과신했어. 나는 하라주쿠의 아무 카페에 들어가 모찌 떡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당을 충전하고 에비스의 샵에 들러 이것저것 둘러봤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상우가 깨어 있었다. 상우의 길고 출렁이는 검은색 단발머리에서 유독 윤기가 흘렀다. 나가자고 했지만 나는 우선 좀 자야겠다고 말했다.

3시간쯤 잔 거 같다. 핸드폰을 보니 상우의 문자가 와 있었다. ‘집 앞의 바인데 괜찮으면 와요.’ 밤 10시였다. 나는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가는 비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바는 허름한 상가의 2층에 있었다. 이름은 ‘bar perro’ 인테리어랄 게 없었지만 이교도의 굴처럼 아늑했다. 두 명의 바텐더가 있었고 바에는 상우를 비롯한 두어 명의 남녀가 있었다. 상우는 바 끝에 앉은 여자를 가리키며 저분이 사장이래요, 라고 했다. 30대 후반의 여자로 인물이 대단했고 웃음이 잦았지만 거리 조절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사장과 잠깐 대화를 나눴다. 곧 세 명의 남자 손님이 왔는데 세 명 모두 인물이 특출났다. 뭐야 이 바는. 내가 말했다. 상우가 선글라스를 끼고 들어온 남자를 가리키며 영화배우라고 했다. 검색해 보니 꽤 알려진 중년 남자 배우였다.

사장은 그들을 피해 우리 곁에 앉았다. 왠지 신이 나서 안 되는 영어와 일어로 이 말 저 말 떠들었다. 그녀 역시 영어가 부족했지만 열심히 듣고 이야기했다. 대화가 갑자기 끊긴 건 내가 십 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머문다고 했을 때부터였다. 그녀는 육교 옆에 있는 아파트냐고 했다. 내가 맞다고 방은 지저분하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고 하자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시종일관 웃음기가 있던 전과 너무 달라 큰 실수를 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바텐더에게 뭐라고 얘기하고는 짐을 챙겨 일어났다. 당황한 내가 즐거웠다고 했지만 그녀는 흘깃 볼 뿐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세 명의 남성에게 다가가 뭐라고 소곤소곤 말했다. 그러자 남자들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무례할 정도의 시선이었지만 따지기엔 외국어 실력이 딸려 잠자코 있었다. 상우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는 이미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얼른 계산하고 일어났다. 상우는 더 있다가 온다고 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에
검고 축축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방에 돌아오니 문이 열려 있었다. 잠그고 나왔던 것 같은데. 방에 들어가 불을 켰는데 형광등이 깜박이더니 불이 나갔다. 짜증이 확 몰려왔는데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앞을 보니 발코니에 누군가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람이었다.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다시 보니 상우였다. “아…. 언제 왔어요?” 내가 말하며 발코니로 다가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상우가 고개를 들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자꾸 돌리는 것처럼 얼굴에 그늘이 졌다. 상우가 서 있는 발코니 바닥이 물기로 흠뻑 젖어 들었다. “상우씨, 괜찮아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물컹했다. 깜짝 놀라 보니 상우가 아니라 중년 남자 배우였다. 그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에 검고 축축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으악!” 내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자 상우가 옆 침대에 누워서 말했다. “악몽 꿨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어비앤비에 머문 4박 5일 내내 악몽을 꿨다. 상우가 말했다. “일본에서 에어비앤비는 안 된다고 했잖아요.”

                  

여행지의 방에 관한 에세이, ‘THE ROOM.’ 각각의 방에는 완벽하게 다른 얘기가 존재합니다. 이번에는 이장욱, 정세랑, 정지돈 작가의 글을 담았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