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OM | Pension Meridiano

소설가 김연수가 여행지에서 머문 방.

Write — YEONSOO KIM
Illustrate —
JIYE KIM @kamidamikim
Edit —
HYEWON JUNG @hyewonittoo

2개월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려고 마음먹은 뒤, 정보를 검색하다가 ‘코스타 델 솔’이라는 표현을 발견했다. ‘태양의 해변’이라는 뜻으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남쪽 해안, 그러니까 지중해에 접한 지역의 별명이었다. 그때가 10월 말이었으니까 아침 저녁으로는 슬슬 쌀쌀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코스타 델 솔’이라니까 단번에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그 뜨거운 햇살, 뫼르소를 살인에까지 이끈 강렬한 햇살이 떠올랐고, 나는 태양의 해변에서 여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여행가방에는 당연히 수영복도 들어갔다. 나는 매일 지중해에서 수영하는 자신을 상상했으니까.

그렇게 도착한 11월 초 말라가의 햇살은? 좀 미적지근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럼에도 내겐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건 연인과 이별하고 하루 정도가 지난 뒤의 상황과 비슷했다. 마음은 여전히 뜨거웠기 때문에 무표정마저도 치명적인 그런 상황. 우리가 어쩌다가 서로에게 이런 꼴이 되었느냐고 11월의 지중해에게 따졌으나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목소리처럼 바다는 같은 파도소리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었다. 태양의 해변을 기대했던 곳에서 쌀쌀한 기운을 느끼니 마치 수온주가 영하로 내려간 것 같았다. 나는 밤마다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 이불을 감싸고 덜덜 떨었다.

“만족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말라가에서 불만이었는가?”

닷새 만에 나는 태양의 해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러니까 스페인에도 겨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더 북쪽을 여행하기로 했다. 말라가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다음 도시로 그라나다를 선택했다. 원래는 더 많은 도시를 돌아본 뒤, 오래 머물 곳을 정할 생각이었는데 그라나다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슷한 기온이었거나 더 낮았을 게 분명했는데도 그라나다는 말라가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오래된 도시의 오밀조밀한 골목과 아기자기한 가게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공간이 넓어서 오히려 썰렁하게 느껴졌던 말라가의 셋집과 달리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호스텔의 싱글룸을 숙소로 잡았기 때문일지도.

그 호스텔의 이름은 펜션 메리디아노였다. 그라나다 대성당 남서쪽 골목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이었다. 스페인의 건물들이 대개 그렇듯이 가운데 중정을 비워두고 사각형으로 돌아가며 방들이 있었다. 중정 쪽으로 창이 난 방에서 나는 묵었다. 싱글침대, 스탠드가 놓인 책상과 의자, TV, 전열기 등이 있었다. 1층은 여행자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었고, 공동욕실을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하루에 17유로인데 3박 이상을 예약하면 15유로로 할인해줬다. 욕실만 빼면 만족스러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만족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말라가에서 불만이었는가?

“지붕이 잘라낸 직사각형의 밤하늘로 달이 떠 있던 순간도 있었다.
태양을 기대하고 왔다가 뜻밖에도 나는 달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가 잘 안 되면 의자에서 일어나 중정이 보이는 창으로 갔다. 거기 서면 직사각형 건물의 내부에서 저마다 불을 밝힌 창들이 보였다. 1층의 안쪽 공간은 그 호스텔을 운영하는 가족들의 주거지였다. 다른 창들과 달리 그곳에서 나오는 불빛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거기에는 대화가 있고, 웃음이 있고,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노란 불빛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역시 건물의 지붕이 잘라낸 직사각형의 밤하늘로 달이 떠 있던 순간도 있었다. 그 달을 볼 때면 외롭지 않았다. 태양을 기대하고 왔다가 뜻밖에도 나는 달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마찬가지로 에스프레소라도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오후가 있다. 그럴 때면 미련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열쇠와 책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이사벨 여왕이 이슬람군을 몰아낸 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골목을 걸었을까를 상상하면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을 것이다. 그라나다 대성당의 무덤 속에 있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과 같이. 몇 십 년이 지나면 나 역시 죽겠지. 천년도 넘는 고도(古都)에서 하는 그런 생각은 전혀 슬프지 않다. 10여 분쯤 걸어가면 커피숍이 즐비한 광장이 나온다. 거기 바깥자리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뒤 햇살을 찾아 고개를 들다가 나는 깨닫는다. 고개를 들었다가 문득 알함브라 궁전을 보게 되는 것, 그게 바로 만족이라는 것을. 어쩌면 그 순간을 찾아 나는 여행을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THE ROOM’은 누군가가 여행지에서 머물렀던 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그라나다, 쿠바 니케로, 캐나다 몬트리올. 지도에 찍힌 위치뿐만 아니라 그곳이 주는 인상은 저마다 다릅니다. 벨보이가 사랑한 작가 세 명의 여행 에세이를 시작합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