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OM | Tokyu Stay Suidobashi

작가 정세랑이 여행지에서 머문 방.

Write — SERANG JEONG
Illustrate —
JIYE KIM @kamidamikim
Edit —
HYEWON JUNG @hyewonittoo

서울에서 살아가며 도쿄를 여행하는 일은, 마치 사이가 나쁜 이복형제를 동시에 사랑하는 것과 비슷했다. 닮았는데 다른 점들을 짚어보면서 이쪽저쪽에 마음 흔들려 하다가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는 연애소설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도쿄에 네 번을 갔다. 스물두 살 때 여행으로 처음, 스물세 살 때 다시, 서른한 살 때 일 때문에, 서른세 살 때 그곳에 살게 된 친구를 만나러……. 그중 세 번째 방문 때 도큐스테이 스이도바시에 묵었다.

커다란 베이지색 동물의
폐 속에 들어가서
자는 것만 같았다.

책이 번역되었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간 것이어서 평소와는 여행의 성격이 달랐다. 다들 반갑게 맞아주셔서 기쁘면서도,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계속 긴장 상태였다. 비즈니스호텔의 작은 방 침대 위에, 매일 밤 그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았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내가 고른 방도 아니었고, 아름답기보다는 실용적인 방이었지만 감미로운 안식처였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데 타고난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서투른 말솜씨에 짧고 길게 웃어준 분들이 고마웠다. 나쁘지 않았다고, 내일도 할 수 있겠다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누웠을 때 보이는 풍경은 대단할 것 없는 옆 건물의 일부였다. 근처의 도쿄 돔이 짠 하고 보였다면 좋았겠지만 상관없었다. 유리창은 안전을 위해선지 밀봉되어 열리지 않았고 환기는 별도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 공기가 순환하는 소리를 내내 듣다가 잠들었다. 커다란 베이지색 동물의 폐 속에 들어가서 자는 것만 같았다.

내가 가져간 포멀한 옷들은 7월의 도쿄에선 지나치게 두꺼웠고 공기가 통하지 않았다. 일본 출판사의 마케터 님이 “양산 없어요? 모자는요? 부채는?” 하고 걱정해줄 정도였다. 전철역 입구나 공원에서 기절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스프링클러를 뿌리는 수준의 더위 속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잠깐 외출했다가도 호텔의 에어컨이 그리워졌다. 시트 위에 매미처럼 누워 다음부터 여름 도쿄엔 리넨을, 오로지 리넨 옷만을 가져오겠다고 결심했다. 호텔로 가는 골목엔 그러고 보니 이끼가 한가득 피어 있었다.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더위와 습기로 사는 생물이었구나, 웃음이 났다. 짬을 내 홋카이도 명물 식품을 파는 매장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홋카이도 출신 분이 라벤더 아이스크림은 관광객이나 먹는 것이니 그냥 우유 맛을 먹으라고 권해주어서 우유 맛을 고를까 하다가, 우유 맛 반 메론 맛 반을 골랐다.

마지막 날 밤에 호텔 근처에서 다 같이 식사를 했던 저녁이 기억난다. 중국 요리에 곁들여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차를 마셨는데 시원하고 달고 향기로웠다. 어떤 대화는 통역되었고, 어떤 대화는 통역되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대화를 따라잡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책을 사랑하고 만드는 사람들이 쓰는 단어들이라 예측할 수 있어서였을까? 담당 편집자 님이 그 더위 속에서도 핵발전소 추가 건설에 반대하며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부채만으로 생활한다는 이야기에 존경심을 느꼈던 것도 생생하다. 3.11 대지진 이후의 도쿄 사람들에겐 분명 어떤 큰 변화가 있었다. 더 오래 머물렀다면 자세히 알 수 있었을 텐데 희미한 짐작만이 여행자로서 얻을 수 있는 전부였다.

일본어도 하지 못하면서
진보초를 그리워하는 건 왜일까?

가끔 도쿄에서 엽서가 온다. 짧은 글에서 친밀감을 한껏 느끼고 만다. 일본어도 하지 못하면서 진보초를 그리워하는 건 왜일까? 그곳엔 내가 읽지 못하는 책들만 가득했는데도 말이다. 언젠가 아주 지쳤을 때 그곳을 다시 찾아가면, 서점 거리를 느리게 걷다가 도큐스테이 스이도바시에 체크인 한 후 숙면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몇 호실이었는지 기억난다면 좋을 텐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여행지의 방에 관한 에세이, ‘THE ROOM.’ 각각의 방에는 완벽하게 다른 얘기가 존재합니다. 이번에는 이장욱, 정세랑, 정지돈 작가의 글을 담았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