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OM | W Montreal

소설가 김사과가 여행지에서 머문 방.

Write — APPLE KIM
Illustrate —
JIYE KIM @kamidamikim
Edit —
HYEWON JUNG @hyewonittoo

심지어 여행책을 쓰기도 했건만 사실 나는 여행을 귀찮아하는 편이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이동, 맛집 탐방, 유적지나 박물관을 돌아보는 과정 모두가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최근 에일리언 시리즈에 나오는 데이비드 같은 인공지능 집사가 대동하여 완벽한 스케줄을 짜 준다면 생각해 볼 것도 같은데… 아니다. 분명 그 똑똑한 지능으로 나를 에일리언 소굴에다가 데려다 놓고 패닉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할 것이 분명하다.

휴식 같은 여행,
물론 그것은 더 많은 돈을 쓰고 싶다는
욕망의 가식적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은 현대인의 교양이므로 안 갈 수는 없고 전략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극기훈련 같은 여행 말고, 휴식 같은 여행을 하기로. 물론 그것은 더 많은 돈을 쓰고 싶다는 욕망의 가식적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내가 얼마 전에 가식적인 여행의 목적지로 정한 몬트리올의 땅값이 아직 그렇게까지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숙박비가 아직 제정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파리나 로마라면 불가능할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 도전해 볼 수 있다. 그것이 ‘W 호텔’이라면 ‘휴식 같은 여행’이라는 모순적인 목표 또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커다란 알파벳 로고 아래에서 모든 것이 더도 덜도 말고 모범적인 수준의 만족감을 줄 것이므로.

빅토리아 광장 지하철역에서 약 3분, 주말 밤이면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는 구시가지까지는 10분 남짓의 편리한 위치에 들어선 호텔은 재미있는 사연도 하나 있다. 19세기에 세워진 은행 건물을 리노베이션했다는 것이다. 원래의 고루한 외양을 그대로 둔 채, 장난 같은 하트 모양 스프레이 낙서가 지상층의 창들을 수놓고 있다. 부잣집 아이들이 장난쳐 놓은 듯한 90년대풍 그라피티들은 의외로 단출한 입구를 지나 라운지 바까지 이어진다.

호텔 바로 앞 잔디밭이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방은 W 호텔, 하면 떠오르는 딱 그런 방이다. 검은색에 흰색 사선 무늬가 들어간 카펫, 새하얀 침대와 탁자 맡에 놓인 황금빛 벤치와 의자, 오직 두꺼운 커튼으로 방과 구획을 나눈 욕실에는 2인용으로도 손색없을 듯한 욕조가 놓여 있다. 그리고 선반에 가지런히 놓인 ‘블리스’의 연하늘색 과일향 클렌저와 로션들.

‘그 방에 대한 당신의 솔직한 인상은 무엇입니까?’라고 스스로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주말에 도심으로 놀러 나온 돈 많은 대학생 남자애가 클럽에 가서 맘에 드는 여자애를 데려왔을 때 가장 성공적일 수 있는 그런 장소. 다시 말해 가장 이상적인 원나잇 스팟. 그렇다. 하룻밤 작은 파티에 더블유 정도로 쓰는 애라면 어느 정도 상식이 있고, 아주 이상할 확률은 적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라는 것은 물론 그 가설을 실험에 옮길 생각이 없는 나의 무책임한 망상입니다.

물론 그 호텔에 묵는 사람들의 얼마 정도가 그런 식의 하룻밤 작은 파티에 열을 올리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포함하여 오히려 그런 파티와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다들 그냥 그런 분위기를 좀 느껴 보려고 그 호텔에 가는 건지도. 호텔을 나설 때면 풀장착을 하고 입구의 W로고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사진을 찍고 나서 그들이 어디로 사라져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괜히 쓰지도 않는 블리스 보디로션을 모으는 데 집착하고 있을 뿐…

온 도시가 음악 콘서트장으로 변신하는
이 낭만적인 도시 한복판에서
싱겁게 시간을 죽이는 것.

늦은 밤, 얼굴에 이니스프리 알로에 팩을 붙이고, 창가에 놓인 황금 소파에 누워, 양발을 벽에다 올려놓고,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에 접속, W Montreal을 검색해 본다. 오늘도 여러 사람이 이곳에 왔고, 있고, 또 갔구나. 라이크를 눌러 볼까 말까. 내가 지금 몬트리올의 비싼 호텔 방에 드러누워서 뭘 하고 있는지 엄마한테 말하면 엄청 한심해 하겠지. “그런 건 어디에서든 할 수가 있지 않니!” 하지만 엄마, 그게 핵심인걸. 달빛 아래 그림 같은 식민지풍의 구시가지 ‘Vieux Montreal’이라든가, 요새 지구상 가장 힙한 동네라는 ‘Mile End’, 무엇보다도 깊어가는 여름밤 온 도시가 음악 콘서트장으로 변신하는 이 낭만적인 도시 한복판에서 싱겁게 시간을 죽이는 것. 어찌나 멋대가리가 없는지, 저 반질반질한 욕조 속으로 뛰어드는 것조차 귀찮다. 나도 몰랐다, 어렸을 때는. 내가 이런 멋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줄은.

                  

‘THE ROOM’은 누군가가 여행지에서 머물렀던 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그라나다, 쿠바 니케로, 캐나다 몬트리올. 지도에 찍힌 위치뿐만 아니라 그곳이 주는 인상은 저마다 다릅니다. 벨보이가 사랑한 작가 세 명의 여행 에세이를 시작합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