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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의 도쿄에서 단연 신선한 곳은 레숍이었다. 서울에 돌아와 가장 먼저 벨보이와 레숍의 이 인터뷰를 다시 꺼내보았다.

                                 

Edit. WONYOUNG JANG @vvyjang
Illustration. HEZIN O @ohezin



지금 도쿄의 패션 시장에서 레숍(L’ECHOPPE)은 독보적이다. 저널 스탠더드의 모기업 베이크루즈가 운영하는 아오야마의 이 작은 편집매장은, 옷 입기의 새로운 단서를 찾아 헤매는 2010년대의 패션 애호가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신선한 재료와 발견을 공급한다. 뿌리에 충직하되 쉬운 유형화를 거부하는 이곳의 고집 센 옷들은, 사용법이 물건의 개성을 앞서는 남성복의 오래된 습관에 의문부를 찍는다. 반조립된 부품이 아닌 단단한 착상에서 새롭게 출발해 볼 것을 권하며. 기획자이자 바이어인 카네코 케이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카네코 케이지 @keiji_kaneko
KEIJI KANEKO, Conceptor & Buyer Of L’echoppe


레숍을 ‘옷의 반찬 가게’라고 소개하곤 해요. 무슨 뜻인가요? 지금 우리가 사고 싶은 옷은 베이식한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옷에 어우를 만한 물건일 거라고 느꼈어요. 음식에 비유하면 ‘주식’이 아닌, 밥과 함께 먹었을 때 맛있는 반찬 같은 옷. 그런 옷을 모은 가게를 만들어 가보고 싶었어요.


펜실베이니아의 아미쉬 햇, 아르헨티나의 가우쵸 팬츠, 스코틀랜드의 킬트에서 프랑스군의 모터사이클 팬츠까지. 종잡을 수 없는 물건의 구색이 레숍의 매력입니다. 지금도 새로운 시즌의 바잉을 위한 세계 일주 중이라고요. 어떤 동선을 계획했나요? 전철역 내 쇼핑몰만 가도 필요한 물건이 충족되는 시대에 구태여 아오야마의 불편한 장소에서 가게를 하겠다면, 오로지 여기밖에 없는 물건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바잉의 미개척지 혹은 옷의 기원지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예요. 이번에는 누구나 잘 아는 장소만을 방문해 아무도 잘 알지 못할 세계를 전달하고자 여정을 짰어요. 이 시기에는 보통 유럽을 경유해 미국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거꾸로 갑니다. 27일 간 LA에서 덴버, 뉴욕을 거쳐 파리와 런던, 코펜하겐 순으로 이동하며 도중에 교외 지역도 상당수 돌아볼 예정이에요.


새롭게 방문하는 지역 혹은 특별히 기대하는 장소나 브랜드가 있나요? 미 대륙의 서부에서 동부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문화의 차이가 낳은 고유한 제작의 방식에 대해 제 나름대로 추적해 보려 해요. 전시회나 쇼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 볼 계획이에요. 그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지역의 풍토와 개인의 스탠스 사이의 적절한 긴장 관계가 매력적인 물건의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의 아미쉬 주거 지역에 위치한 플라잉 클라우드 햇츠의 아틀리에.


이번 가을 겨울 가장 기억에 남는 물건은 무엇인가요? 루케이시(Lucchese)의 숏 부츠. 원래는 사이드 지프 방식이지만 지퍼를 떼어 달라고 요구했어요. 특유의 날렵함에 활용성을 겸비한 자신 있는 작품이에요. 부담스러운 카우보이 부츠를 일상에서 신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들어요. 같은 브랜드의 로퍼도 함께 진행했는데, ‘카우보이 부츠 메이커가 만드는 로퍼’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즉각적 결정을 요하는 바잉의 순간, 무엇이 잣대가 되곤 하나요? ‘손님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그려지는가?’가 흔들리지 않는 축입니다. 요즘은 그런 것들이 단번에 눈에 보이기도 해요.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지만요.


루케이시는 1883년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서 창업한 카우보이 부츠 회사다. 로퍼 토(roper toe), 카우보이 힐과 같은 고유의 세부는 간직하면서 인상을 다듬어 위화감을 줄인 숏 부츠와 웨스턴 부츠의 제작 방식을 빌려 만든 로퍼.


레숍은 다분히 고전적 형태의 가게입니다. 평준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이곳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해요. 어떤 홍보 효과 없이도, 오로지 주인의 ‘감’을 믿고 찾게 되죠. 베이크루즈라는 기업에 속해 있으면서 그런 개인 상점스러운 운영 방식을 취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에요. 다행히 회사의 양해가 뒷받침된 덕분에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죠. 레숍이 하고 있는 일은 아주 단순합니다. ‘손님 대신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눈으로 본 것들을 가지고 돌아와 소개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걷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즌을 위해 준비된 상품만이 아니라 원래 그곳에 있었던 물건을 함께 찾아 보여주는 바잉의 방식은 지금의 가게를 시작하면서 굳어진 것인가요? 그 방식은 20년 간 일을 하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반 년 후의 상품만을 바잉하는 건 재미도 없을 뿐더러, 상품은 신선도가 생명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눈 앞에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가장 신선하고 좋은 것일 수밖에 없어요.


새로운 물건을 찾는 일에 한계를 느끼진 않나요? 전혀요. 세계는 생각보다 넓고 찾으면 찾을 수록 새로운 것이 튀어나와요. 찾고자 하는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발견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턴불 앤 아서와 힐디치 앤 키의 영국제 드레스 셔츠는 여러 번 빨아 넉넉히 걸쳐 입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뉴욕의 클리어웨더에서는 클라이밍 슈즈를 재편집한 독특한 스니커즈를 골랐다.


에디피스(EDIFICE)의 바이어로 오래 일했죠? 모회사인 베이크루즈를 잠시 떠났다 돌아와 레숍을 열었는데, 그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스픽 앤 스팬이라는 여성복 매장의 판매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2년 후 에디피스로 이동해 다시 반 년 후에 바이어가 되고, 7년 정도 일을 하다 서른 두 살이 되던 해에 회사를 나왔죠.마흔 한 살 무렵 베이크루즈로 돌아갔는데, 에디피스 시절의 선배인 이사님께 이런 제안을 받았거든요. 지금의 편집매장의 존재 방식을 재검토해, ‘멋있으면 옷은 팔린다’라는 신념으로 되돌아간 가게를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고. 간단히 말해 우리가 옷을 사고 싶은 가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어요.


프라이빗 브랜드(PB)인 리퍼포즈(RE-PURPOSE)의 방식 또한 재미있어요. 대개 PB는 유행과 연동된 단순하고 팔기 쉬운 물건이 주가 되기 마련인데, 리퍼포즈는 60년대 스킨스 재킷 같은 걸 떡하니 만들어버리곤 하죠. 가격도 결코 ‘합리적’이진 않고요. 처음 가게를 열 무렵 회장님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대신, 할 거라면 제대로 해라”라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으셨어요. 든든한 말씀을 들은 만큼, 상상을 뛰어넘는 독보적인 라인업을 갖추기로 결심했죠. 리퍼포즈는 그 생각을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무언가를 모방하는 식으로는 일을 하지 않아요. 디자인 팀은 옷의 제작에 있어 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타겟으로 삼는 이들에게 자신을 가지고 권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리퍼포즈는 모 유명 브랜드의 디렉터를 포함해 각자 본업을 가진 네 명의 디자이너가 만든다.


오래된 옷의 문법이 규정하는 남성복의 세계에서, 레숍은 언제나 샛길을 걷는 듯 보입니다. 그 면모는 분명 ‘클래식’하지만 어딘가 꼭 다른 물건을 제시하죠. 스탠더드하지 않은, 말하자면 비껴간 클래식이랄까요. 디자이너를 포함한 업계 종사자 또한 우리의 타겟이기에 그들조차 눈여겨보지 않던 것을 제안해야만해요. 한편으로 저는 유행이나 런웨이 같은 것을 거의 확인하지 않는 탓에 세상의 동향이 어떤지 잘 몰라요. 그저 제 느낌을 가지고 일을 할 뿐이다 보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압도적인 물건에는 어쩔 수 없이 끌리곤 한다'고 말한 적 있어요. 압도적 물건이란 어떤 것일까요? 아주 모호하지만, 단번에 ‘굉장하다’는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스펙’이나 디자인, 소재 등의 모든 것이 제 생각을 능가하는 물건입니다.


합리적 가격의 흔한 브랜드’란 인상이 강했던 할리 오브 스코틀랜드에게는 부러 검정색 바탕의 비전통적 크리켓 스웨터를 의뢰했다. 스웨트 셔츠는 창고에 가지고 있던 캠버의 제품을 뒤집은 후 'US 아미' 풍의 로고를 고무 날염 한 것.


레 유카스(Le Yucca’s)는 엔조 보나페의 공방에서 구두를 만든다. 우아한 홀스 빗 로퍼에 투박한 굿이어 웰트 제법을 사용하는 등 비전형적 아이디어로 신사화의 새로운 형식을 제안한다.


레숍은 친절하지 않아요. 남성복에 으레 따라붙기 마련인 가이드를 제공하지 않죠. 개개의 물건을 재료로서 늘어놓을 뿐입니다. 덕분에 그 어느 곳보다 상상을 자극하는 공간이기도 해요. 때로는 친절함이 가치를 반감시키기도 합니다. 저는 어느 정도 불친절한 가게에 더 매력을 느껴요. 다소간 덜 편리한 쪽이 쇼핑이라는 행위 본래의 즐거움을 더욱 만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온라인이라면 클릭 한 번으로 멋진 옷과 스타일링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싱거운 면이 있죠. 친절함의 끝이 온라인 스토어라면 우리는 그 반대로 가자고 결정했어요. ’자유로운’ 쇼핑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수십 년 동안 일본의 남자들은 공부의 방식으로 옷을 즐겨왔어요. 레숍은 사람들이 어떻게 옷을 즐겼으면 좋겠나요? 과거에는 저도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매월 발간되는 패션지를 대부분 챙겨 보며 사기도 많이 샀죠. 이제 와서 그것들이 제 일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실감하기에 항상 배워 가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은 되도록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정보도 닫아 버리고 오로지 발로 찾아 발견하고 손에 들어 만져보며 제 나름대로 느끼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옷을 찾고 고르는 일이 돌연 즐거워지지 않을까요? 즐거운 일,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 휴대 전화나 컴퓨터로 얻은 정보에 만족해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에요.


레숍의 손님은 누구죠? 업계 종사자에서 일반인까지, 옷을 좋아하며 라이프스타일이 일정 수준 확립된 사람. 다만 근래는 20대 초반의 젊은 손님도 늘고 있어요. 연령에 관계없이 ‘옷을 좋아한다’라는 키워드에 보다 명료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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